第8話 : 사형수(死刑囚)의 장난


  조선조에 임금이 사대부를 극형으로 다룰 때에는 대개 사약을 내렸다.

사약(賜藥)이란 죄인에게 죽을 약을 내리는 것이므로 의례 독약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인삼과 부자와 같은 보약재를 달인 물이었다.

한방에서 인삼과 부자는 모두 열약(熱藥)으로서, 몸이 차고 허한 사람에게는 둘도 없는 특효약으로 통한다. 그래서 사약을 받은 죄수를 죽게 하려면 때로 약을 먹인 후 뜨거운 방에 드러누워 있게 하거나, 독한 술을 먹여서 약기운을 한껏 발산시키도록 하기도 하였다. 참수를 하거나, 죽을 때 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독약을 먹이지 않고 이같이 더운 약을 먹여서 죽도록 한 것은 양반 정치범에 대한 일종의 예우가 아니었나 한다.

그런데 종종 체력이 뛰어난 사람은 약을 마시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종국에는 금부의 나졸들이 활시위나 말고삐와 같은 끈으로 목을 조여서 교살(絞殺)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야기는 나주 사람인 임형수가 사약을 받던 때의 일이다.

임형수는 호를 사수(士遂)라 하며, 明宗때 제주목사를 지낸 분으로서 성품이 강직하고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결국 간신 윤원형 무리의 미움을 받아 극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임형수는 체력이 절륜한 자라 사약을 마신 후 독한 술을 여러잔 들이킨 후에도 좀처럼 숨을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아니하였다. 기다리다 못한 금부도사가 밧줄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임형수에게, "오래 고생하시느니 이게 차라리 나을 것이오." 하며 교살할 뜻을 비추었다.

임형수가 잠시 밧줄을 바라보며 뭔가 생각하더니,
"내 손으로는 차마 목을 조를 수가 없구려. 목은 내가 맬 터이니 수고스럽지만 누가 끈을 좀 당겨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나 줄을 당기는 일도 목매인 사람 앞에서는 차마 하기 어려울 일일 터이니, 내가 목을 매고 나서 끈을 밖으로 내보내면 밖에서 잡아당기는 것이 어떻겠소."
"좋소. 그렇게 하십시다."

도사가 선선히 응하고 밖으로 나오니 과연 조금 있다가 문 틈으로 밧줄이 나왔다. 나졸들이 밧줄의 양 끝을 하나씩 나누어 쥐고 힘껏 잡아 당겼다. 그러다가 '이제는 천하장사라도 숨이 끊어졌겠지' 할 때 쯤 되어서 밧줄을 놓았다.

그런데 도사가 죽음을 확인하려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죽어 있어야 할 죄인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게 아닌가!

도사가 놀라서 방안을 둘러 보니 밧줄에 묶인 목침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고, 임형수는 방구석에 앉아 이것을 바라보며 껄껄거리고 있었다.
"미안 하외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잘 할런지 몰라서 한 번 시험하여 보았소."
임형수는 이같이 말하고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었다.
 
 


임형수가 죽음 앞에서 벌인 천진한 장난을 보며 우리는 감히 웃을 수가 없다.
그것은 곧 병든 세상을 우롱하는 처절한 풍자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만이 벌일 수 있는 한 판의 연극이기 때문이다.
 


  --------- 허신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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