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3話 : 멧돼지의 지혜


  먼 옛날, 어느 깊은 산중에 멧돼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멧돼지 몇마리가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집채만한 큰 호랑이가 길목에 떡 버티고 서서 그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퍼렇게 서슬이 선 호랑이의 눈매를 본 멧돼지들은 그만 간담이 써늘해지고, 사지에서 절로 맥이빠져 그 자리에 그만 털석털석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턱은 턱턱턱 소리를 내며 연신 떨어대고, 사지는 또 제 멋대로 덜덜 거리는 바람에 모두 달아날 엄두마져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겐 호랑이의 피가 되느냐, 아니면 호랑이의 살이 되느냐 하는 길밖에 없는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담이 크고 제법 힘이 세서 멧돼지들의 왕초 노릇을 하던 놈이 언뜻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저놈의 밥이 돼 줄 수는 없다. 기왕에 당할 것 한번 붙어보자."

그러나, 그가 아무리 멧돼지 무리에서 왕초노릇을 한다 한들 어찌 감히 호랑이 앞에 발톱을 내보일 수 있겠습니까. 호랑이에게 덤벼드는 것은 스스로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지는 의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호랑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이, 虎선생. 어찌 거기 혼자 계신가?"
"음, 뱃속이 조금 허전해서 식사나 좀 할까 하고 나와 있었다네. 그런데 자네들이 일부러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고맙구만."
"암, 항상 배는 굶지 말고 살아야지. 그런데 어떻허나? 지금은 우리들 이 몹씨 바빠서 자네 식사를 도와줄 수 없으니...."
"바쁘다고? 그렇다면 어서 이리 가까이 오게. 내 얼른 식사를 마쳐줌세."
"그 이야기는 나와 함께 겨루어 보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어때, 정말 한번 붙어볼텐가? 지금 내가 몹씨 바쁘지만 자네가 진정으로 원 한다면 내 잠시 상대해주겠네."
"거 꽤 웃기는 녀석이구나. 그나 저나 배가 고프니 우선 너부터 잡숫고 봐야겠다. 할 말이 있거던 내 뱃속에서나 하렴."
"자네가 그토록 나와 겨루어보고 싶다면 내 잠시 상대해 줌세. 그러나 조금만 기다려주게. 내 얼른 가서 우리 조상들이 쓰던 갑옷을 입고 오겠네."
"거 참 귀찮은 놈이구나. 잠시 기다려 줄테니 얼른 다녀 오너라."

잠시 후에 그 멧돼지 왕초가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자, 내 갑옷이 어떤가? 겁이 나지 않거던 한 번 덤벼보게."

호랑이가 그를 바라보니 온 몸이 돼지들의 똥과 오줌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산중에 진동을 했습니다. 호랑이가 코를 싸쥐면서 뒷걸음을 쳤습니다.

"어서 꺼져라. 이 더러운 돼지새끼들아! 너희들 그 더러운 똥오줌이 내 비단옷을 더럽힐까 겁난다."

호랑이는 이렇게 외치면서 숲 속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써 오히려 강한 적을 꺾고, 자기를 온전히 버림으로써 동료들의 생명까지 건져낸 이 멧돼지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아우성치며 각축하는 우리들에게 이 "버림의 效用", "낮춤의 美學"은 차라리 驚句로 해석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허신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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