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0話 : 이런 청혼을 누가 거절할까?


  옛날, 어느 고을에 바늘을 만드는 장인(匠人)이 하나 살았다. 그는 본래 재주가 뛰어난 데다가, 항상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가 만든 바늘은 어 디서나 최고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에게는 열 다섯 살 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빼어나게 미색일 뿐 아니라, 재주있고 심덕마져 고와서 인근 총각들이 하나같이 욕심을 내었다. 고을에서 으뜸가는 부자요, 세도가인 홍진사댁 외동아들도 그 처자를 한 번 보고는 그만 마음 을 빼앗기고 말았다. 홍도령은 워낙 처지가 다른지라 처음에는 처자를 잊어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연모의 정은 오히려 더 깊어만 갔다.

사랑의 열병을 견디다 못한 그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부모님, 고개 너머에 사는 제침공(製針工)의 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그 처자가 아무리 절색이라 하여도 그렇게 천한 직공의 딸을 우리 집 며느리로 삼을 수는 없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그의 부모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아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찌 부모님은 신분만 중히 여기시고 사람은 보지 않으십니까? 그 처자와 혼인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집을 나가겠습니다."

아들의 결심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음을 안 그의 부모는 제침공을 불러 청혼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침공은 정중하게 청혼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우신 말씀이오나 저같이 천한 사람이 어찌 어르신과 감히 사돈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동류(同流)집 아이를 하나 골라 애를 시집보낼 생각이오니 너무 얹짢게 생각 마십시요."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더욱 비장한 각오를 하였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바늘을 만드는 장인(匠人)이 되자!' 그 후 총각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바늘 만드는 법을 연구하였다.

처녀의 아버지가 만드는 바늘보다 더 질이 좋은 바늘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면서 연구에 연 구를 거듭하였다. 쇠를 두드리고, 갈고, 닦고......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제품이 완성되었다.

그는 바늘을 담은 대나무 통을 매고 처녀의 마을을 찾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바늘이요. 질이 좋은 바늘입니다. 名工이 만든 진짜 명품 바늘을 구경하시오."
이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처녀의 아버지가 뛰어 나왔다. 그리고 총각이 내민 바늘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잘 만들었군. 누가 만든 것인가?"
"제가 만든 것입니다. 자, 이제 이것을 보십시요."
총각은 조금 더 질이 좋은 바늘을 내밀었다.
"음, 이것은 더 잘 만들었군."
"그러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총각은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바늘을 내놓았다.
"아, 이것은 실로 명품이로다!"
제침공은 절로 감탄하며 그 바늘을 물 속에 담가 보았다. 바늘이 가라앉지 않고 물 위를 둥둥 떠 다녔다.
"나는 여태 이렇게 정교한 바늘은 본 적이 없네. 내가 만든 바늘도 이것에는 미치지 못해...."

그제서야 총각은 자기가 홍진사댁 아들임을 실토하고 딸과 혼인시켜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런 총각의 지성에 감탄치 않을 신부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제침공이 주저 없이 말했다.

"알았네. 자네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데려가게나."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선악 미추의 판단마저도 흐려진다.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와같이 지식과 경험마저 까먹고, 분별심마저 잃은 병적인 의식세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아무런 조건도, 아무런 바램도 없는 맹목적인 것이요,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것, 추하고 악한 것까지도 다 포용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 허신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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