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탁업의 역사


신한은행 신탁부 대리

배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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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들어가는 말


현재 영업하고 있는 신탁으로는 신탁업법에 의한 신탁, 중권투자신탁업법에 의한 증권투자신탁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로부터 '투탁', '종중재산의 관리', '노비명의의 토지소유 관리제도' 등에서 이러한 신탁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으나,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신탁업은 역시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이미 신탁제도를 수입한 일본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신탁업이란 자기의 재산을 전문적인 지식과 대규모 조직을 가진 신탁회사(수탁자)에게 이전시켜 일정한 신탁목적에 따라 관리, 처분하게 하여 자기가 소유하였을 때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시키는 하나의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그 관계를 규율하는 각종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현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의 신탁업의 역사를 추적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Ⅱ. 현대적 의미에서의 신탁


근대 신탁제도는 주로 개인 수탁자에 의한 무보수원칙 아래 비영리, 개인적 신탁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볼 수 있으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따른 경제사정의 변화는 개별적인 것으로부터 집단적인 형태로 전환되었으며, 신용있는 대규모 법인 수탁자의 탄생 및 영업신탁으로 변모하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건국과 함께 개인적이며 비영리적인 성격이 강하였던 영국의 신탁제도를 도입초기부터 영리적인 성격하에 회사조직을 통하여 발전시켰다. 미국의 경우 자원개발의 필요성으로 거대자본의 집중이 요청되어 공동신탁기금, 증권투자신탁, 설비신탁, 연금신탁, 공익신탁 등 신탁제도 본연의 특색있는 장기금융기능과 재무관리기능을 살려나갔다.


Ⅲ. 우리나라 신탁업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신탁업이 어떻게 도입되고 업무가 이루어졌는지 특정적인 시대구분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여명기 (1910∼1930)


우리나라에서는 신탁업이 일본인의 한국진출과 때를 같이한 1910년으로 동년 3월에 'ヶ?합자회사'가 투자신탁과 아울러 농업개척 및 부동산관리 경영업무를 개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많은 신탁회사가 설립되었는데 민간 신탁회사의 전성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호황기였던 1918년 이후라 할 수 있다.

또한 1918년 3월 30일 법령 제28호로 조선은행법이 개정되어 동법 제17조제1항제8호에 "신탁의 업무"라는 영업과목이 추가되면서 은행의 신탁업이 태동되었으며. 그후 1918년 6월 7일 조선식산은행령 제16호제1항제11호에도 "신탁의 업무"가 규정되어 신탁의 문호가 개설되었다.

1921년의 조선은행 영업보고서에는 신탁업무의 내용은 분명하지 않으나, 신탁예금으로 3,049만 2375환이라는 기록이 있어 상당액의 신탁이 수탁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담보부사채신탁은 1921년말 현재 조선은행이 3좌 670만환, 조선식산은행이 1좌 50만환의 실적이 있었다.

1930년 현재 상호에 '신탁'이란 명칭을 표시하였던 회사는 80여 개사로 추정되며 대부분 부동산의 매매중개, 창고, 운수업 등 잡다한 업무와 겸영하여 실제 신탁을 주업무로 한 회사는 29개사였다.

1930년 6월말 현재 29개사 중 25개사의 종합수탁상황은 금전신탁 607만 9885환, 부동산신탁 6만 9,316환, 금전채권의 신탁 3,426환, 유가증권신탁 11만 9,190환으로 수탁재산의 대부분이 금전신탁이었으며, 50만환 이상의 수탁실적을 올린 회사는 군산신탁, 부산신탁, 조선식산신탁, 공제신탁 등 4개사에 지나지 않았다.


【각 신탁회사 및 자본금】

<1930년 6월 30일 현재>

(단위 : 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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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전 의용신탁법 (1931∼1945)


영세한 신탁회사의 난립과 취급신탁업무의 복잡한 표기 등으로 신탁업을 건전하게 지도 육성시키고 감독할 수 있는 신탁관계 법령의 제정, 정비가 요구되어 1931년 6월에 일본신탁업이 의용됨과 함께 '조선신탁업령'이 제정되어 동년 9월 동 시행규칙 및 부수법규가 공포되어 12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러한 법률에 의한 지도 육성의 결과 경쟁력있는 군산신탁, 부산신탁, 남조선신탁, 공제신탁, 조선토지신탁 등 5개사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 신탁회사들이 신탁제도 확립 초기에 우리나라의 신탁업무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자본과 경영규모의 영세성으로 적극적인 업적은 이루지 못하여 군산신탁에서만 부동산신탁을 취급하였을 뿐 여타 회사는 금전신탁을 취급하는데 머물렀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인의 한국토지 투자권장을 목표로 하였던 부동산신탁업무의 개척과는 거리가 벌어 자본규모가 크고 부동산신탁 등 여러 신탁업무의 개척을 담당할 수 있는 업체의 출현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결과 1933년 1월 7일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을 중심으로 한 조신신탁주식회사가 1천만환의 자본금으로 개업하고 1933년 9월 30일 군산신탁, 11월 30일 부산신탁, 12월 27일 공제

신탁, 1934년 9월 1일 조선토지신탁, 그리고 11월 30일 남조선신탁을 차례로 흡수하여 우리나라 유일의 신탁회사로 신탁업을 독점하기에 이른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동 당시의 시국적 요청이 반영되어 저축의 반강제적 유치에 따른 금전신탁의 증가, 국채 및 군수산업자금의 조달을 위한 사채의 대량발행으로 인한 유가증권신탁이 발전되었다. 또한 군량미의 확보목적으로 농경지신탁 중심의 부동산신탁도 상당하였다.


【각종신탁 수탁추이】

(단위 : 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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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탁업 암흑기(1945∼1960)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악성 인플레로 경제전반이 혼란한 상황이었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여 신탁의 신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위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일본인의 대량 해약에 따라 조선신탁주식회사는 조선은행으로부터 약 8천만환의 비상차입금을 얻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부동산신탁의 경우도 토지개혁을 우려한 결과 해약이 속출하였고 유가증권신탁 또한 기업의 기반붕괴, 조선주식거래소의 해산으로 그 기반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미군정당국은 미국의 신탁은행을 본 따 은행업무의 겸영을 허용하여 1946년 5월 1일 은행업무를 개시하였으며 동년 10월 29일 '조선신탁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탁은행이 탄생한 것이다.

최초의 신탁은행의 탄생은 신탁업의 완전 후선화(경제여건의 성숙없이는 신탁업의 부흥은 꿈꿀 수 없는)로 이어졌다.

이후 1955년 경제안정 시기에 민간에 의한 한국신탁주식회사의 설립신청이 있었으나, 자본문제로 영업을 개시하지 못한 채 유산되었고, 한국흥업은행(조선신탁은행이 한국상공은행을 흡수합병하여 설립)도 계속하여 신탁업 부홍에 노력하였으나, 해방전 신탁재산의 재평가와 이의 구분관리를 지시한 당국의 명령에 불응하여 1959년 3월 18일 당국은 동행에 영업정지명령을 내렸고, 1960년 7년 21일 동행의 후신인 한일은행에 대하여 신탁업무 면허취소 명령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신탁업은 중단되었다.


4. 신탁관련 법령 제정 (1961∼1968)


군사혁명에 따라 당국은 경제개발에 우선적으로 소요되는 내자조달시책의 일환으로 장기금융업무인 신탁업의 재개 및 육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1961년 11월 3일 한일은행에 대하여 신탁면허 취소처분의 명령을 통하여 11월 13일부터 신탁업무를 취급하게 되었다.

신탁업무가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의해 경제건설 활동의 전면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 때 가장 역점이 주어진 신탁업무는 불특정금전신탁으로 국민의 재산소유형태가 금전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국내 자본시장의 미비 등으로 신탁업의 다양한 발전에는 경제여건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당국에서는 1961년 12월10일 신탁법을, 동년 12월 31일 신탁업법, 1962년 1월 20일 담보부사채신탁법을, 동년 4월 10일 신탁업법시행령을, 동년 8월 30일 신탁업법 시행규칙을 각각 공포하여 신탁에 관한 기본법령의 정비 및 확립을 통하여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새로운 신탁발전 여건을 조성하였다.

정부는 법제의 정비와 아울러 신탁업무 재개 이전의 신탁재산에 대한 정리방침을 확립하고 1962년 9월 24일 '신탁회사의 구신탁재산의 처리에 관한 법률'을 공포 시행하여 재무부내에 동 재산처리위원회를 두고 한일은행내에 동 사무국을두어 처리업무를 개시하였다.


【재개후 신탁】

(단위 : 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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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은행의 신탁업 재개로 금전신탁, 유가증권신탁, 부동산신탁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이자 시중은행(조홍. 상업, 제일, 서울)들은 이에 자극받아 시중은행업무의 균형발전과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내자동원의 공동추진을 목적으로 신탁업무면허 승인신청을 제출 1962년 9월 10일 신탁업 겸영면허를 얻어 10월 30일 금융통화운용위원회의 신탁업무겸영인가를 받아 11월 1일부터 신탁업무를 개시하였다.


【당국의 주요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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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당국의 금리현실화조치와 계속적인 재무당국의 신탁업 육성을 위한 지원조치에 따라 신탁은 발전을 거듭하였으나, 양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탁업은 은행업의 부수겸영적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탁업의 절적, 운용측면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탁업계 내부에서도 대부분의 수탁재산이 불특정금전신탁으로 구성되었고 유가증권신탁, 부동산신탁 등 종합재산관리 기능도 미비하였으며, 수탁재산의 태반이 은행계정으로 전용되어 중장기성 저축자금이 시중은행의 단기성 자금화되어 신탁업무 자체가 은행업무와 동절화되었다는 반성의 목소리와, 국민경제 측면에서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중장기 산업자금의 공급증대 필요성 대두, 국내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직접금융에 기여 및 경제발전과 안정화에 따른 국민채산선호의 다양화에 대응할 종합재산관리기능의 발휘가 요망되어, 신탁업의 은행겸영상태에서 신탁전담기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5개 시은 신탁겸영후 수탁상황】

(단위 : 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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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신탁은행 (1968∼1982)


1968년 12월 2일 신탁업무, 은행업무 그리고 이에 부수 또는 관련되는 업무를 사업목적으로 하는 납입자본금 15억원의 한국신탁은행이 설립되었다. 동행의 설립에 따라 그동안 신탁업무를 취급하였던 5개 시중은행 및 부산은행에서는 1968년 11월 30일 신탁업 겸영인가 일부가 제한되었으며 1970년 12월 1일 신탁업 인가가 취소되어 한국신탁은행만이 신탁업을 취급하게 되었다.

한국신탁은행의 탄생은 은행법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국내 유일한 신탁은행으로 신탁업을 전담하게 되었다는 점과 신탁을 은행업의 부수겸영적 위치에서가 아닌 주업의 위치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활 수 있다.

한국신탁은행은 의욕적으로 신탁업의 다양화를 위한 신종 신탁의 개발로 단위운용신탁, 개발신탁, 부동산설비신탁, 동산설비신탁, 주택건설신탁, 지주신탁, 복지신탁, 교통상해신탁, 담보부사채신탁 등 다양한 신탁업무를 전개하였으며 특히 1969년 2월 24일 청구목재주식회사에 대한 담보부사채신탁을 수탁하였고 1969년 5월 30일까지 8개 회사에 대한 담보부사채신탁을 계속적으로 수탁하여 총수탁액이 14억 5천만원에 이르는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신탁업 주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71년 이후 계속적으로 침체를 보이다 1976년 8월 2일 서울은행신탁업회사였던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여 상호를 '서울신탁은행'으로 변경하고 계속하여 유일하게 신탁업을 겸영하는 은행으로 존속하면서 신탁업무가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1969년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법령 보완작업의 하나로 '증권투자신탁업법'의 제정 공포로, 중권투자신탁제도도 도입되어 1970년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하여 한국신탁은행을 수탁회사로 1억의 기금을 설정 투자신탁업무도 개시하였다.


【투자신탁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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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탁업 겸영확대(1983∼현재)


1968년 이후 계속되던 1행에 의한 신탁업 영위체제는 금융의 자율화에 입각한 금융상품의 다양화요구와 제2금융권과의 차등적 저금리체계하에서 경쟁력 강화와 은행의 수지개선 등 금융정책의 수정으로, 1983년 5월 지방은행, 1984년 2월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신한), 1984년 3월 한미은행, 1985년 3월 외환은행 동년 9월 외국은행 국내지점(개발신탁을 제외한 불특정금전신탁업무에 한정), 1989년 1월 한국산업은행, 장기신용은행, 동년 3월 여타 국책은행, 신설 시중은행 등 신탁업 취급은행의 전면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탁상품으로는 1985년 3월 25일 신탁 최초로 평균기준복합수익율 방식을 도입한 실적배당상품인 가계금전신탁이 도입되었으며, 1987년 1월 5일 노후생활연금신탁, 1987년 9월 1일 기업금전신탁, 1988년 5월 10일 국민주신탁(포항제철) 동 새로운 신탁상품이 등장하였다.

1988년 12월 5일 그동안 신탁자금요율, 불특정금전신탁자금요강, 불특정금전신탁자금신용대출요강, 적립식목적신탁운용요강, 연금신탁운용요강, 개발신탁운용요강, 신탁자금의 은대 유지비윷 및 그 이율 동 각각 혼재하던 요강 등을 하나로 통합한 신탁업무요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1992년 12월 31일 근로자퇴직적립신탁, 1993년 4월 1일 적립식목적신탁 실적배당상품의 취급, 1994년 6월 20일 개인연금신탁업무운용요강의 제정으로 개인연금신탁 취급, 1996년 1월 1일 일반불특정금전신탁 수탁중지 등의 업무영역확대가 이루어졌다.

1996년 5월 1일 가계금전신탁. 기업금전신탁, 적립식목적신탁. 특정금전신탁, 금외신탁 등의 상품의 신탁기간이 1년6개월로 확대되고 중도해지수수료도 대폭 인상되는 등 신탁의 큰 시련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1996년 10월 21일 가계창기신탁의 취급, 1997년 8월 1일 개인연금신탁업무운용요강이 폐지되고 신탁업무운용요강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졌으며, 신탁대출의 동일인(법인) 한도도 규정되게 되었다.


【신탁제도 주요 변경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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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89년 6월 23일 국민주신탁(한국전력). 1989년 12월 1일 금전신탁 이외의 금전의 신탁상품이 시행되었으며 1991년에는 3월 신탁업의 균형발전과 부동산투기억제대책으로 신탁업법 제정 이후 최초로 동법에 의한 부동산신탁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부동산신탁회사는 1991년 5월 10일 부동산신탁업무운용요강의 제정시행으로 영업에 들어갔다.


【부동산신탁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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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맺는말


전은행의 겸영체계 이후 개인연금신탁, 비과세가계신탁 등 신탁본연의 장기자금 조달상품이 활발하게 개발되었으며 1990년 이후 신탁의 수탁고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괄목할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신탁업무 역시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에서 보았듯이 금전신탁을 위주로 한 업무가 대부분으로 각 취급은행에 따라 부분적이고 형식적인 재산신탁(유가증권신탁, 금전채권신탁, 부동산관리신탁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으로 당국에서도 1996년 5월 1일 금전신탁을 이용한 은행간 과도한 수신경쟁에 따라 신탁의 본질과는 괴리되는 단기성 자금의 유치, 우회적 방법을 통한 배당율의 편법인상 등 부작용의 방지를 위해 실적배당원칙의 확립과 신탁의 장기화 유도를 꾀하여 우리 금융산업에서 신탁업의 성격과 위상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한다는 기본방향에서 획기적인 제도개편을 단행하였다.

이제까지는 국민경제상 실질적으로 금전 이외 다른 재산에 대한 축적의 미비와 예적금 등 간접금융선호 경향 그리고 금전 이외 재산의 경우 그 조성에 있어 너무 중요한 자산으로 그 재산의 관리를 제3자 특히 공적인 성격을 가진 금융기관에 신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신탁업의 입장에서도 제도적 미비점과 복잡하고 위험한 채산신탁보다는 쉽고 안정적으로 수익이 확보되는 금전신탁을 선호하여 당분간은 금전신탁을 위주로 신탁업이 발전될 것으로 예상되나, 은행신탁이 은행업과 차별적인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동시에 고객의 재산관리, 중식이라는 신탁의 고유목적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금전신탁에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재산신탁관련 제도적 미비점을 발굴 보완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은행신탁업의 역사속에서 몇 차례 되풀이된 과정으로 우리나라의 은행신탁업의 미래는 재산신탁과 신탁업에 부수하는 업무의 개척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참 고 문 헌


·전신용, 「신탁의 오늘과 내일」, 서울, 동아출판사, 1970

·흥유석, 「신탁법」, 서울, 법문사, 1990

·장형홍, 「신탁법 개론」, 서울, 육법사,1991

·박용일, 「신탁」, 서울, 한국생산성본부, 1977

·이명수 흥유석, 「신탁의 이론과 실무」, 서울, 경진사, 1991

·한국금융연수원, 「신탁업무」, 서울, 1996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금융제도」, 서울, 1993


(1997.9.30. 발행 계간「은행신탁」창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