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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뱀들이 모여 사는 고을에서 어느날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살모사 동네에 사는 뱀 꼬리 하나가 제 친구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데서 비롯되었다. "어이, 꼬리친구.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머리가 하자는 대로 질질 끌려다니기만 할 꺼야?" "그럼 어떻게 하나, 꼬리인 걸." "아니야. 우리도 이젠 뭔가 주장을 세워야 돼." "에이, 꼬리인 주제에 우리한테 무슨 주장이 있을 수 있겠어?" "그런 소리 말라구. 우리도 명색이 뱀이야. 위대한 뱀의 일부분이야!" "그거야 그렇지." "그렇다면 생각해 보게. 대가리 녀석들이 언제 한번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 있어? 항상 제 멋대로 우리를 끌고 다녔지. 어디 그 뿐이야? 맛있는 것들은 제들이 모두 처먹고 그 찌꺼기만 우리에게 내보내지 않느냐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야. 그래서 우리의 몸뚱이가 이렇게 가늘어졌지." "머리들이 특별히 잘난 게 뭐가 있어? 우리보다 겨우 눈과 이빨이 더 달렸을 뿐이지. 그런데도 우리를 똥친 막대기 취급한단 말이야." 처음에는 몇 마리의 뱀 꼬리들이 푸념하듯이 쑤군거렸으나 한 번 불만이 터지자 불만이 들불처럼 온고을 뱀꼬리들에게 번졌다. "맞아, 우리도 이제 이렇게 무작정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우리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야 돼!" 한편, 이 소식을 전해들은 뱀머리들은 긴급구수회의를 열었다. "요즘 꼬리들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모양인데,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책이고 뭐고 꼬리들이 뭘 잘한 게 있다고 까부는 겁니까?" "우리가 먹이를 잡을 때나, 적과 싸울 때는 뒤꽁무니만 쫄쫄 따라다닌 녀석들이 뭐 한 일이 있다고 권리 운운 한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씹다 버린 찌꺼기라도 감지덕지해야지요." "정말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냄새 나는 똥구멍 밖에 없는 녀석들이 제 분수를 알고 떠들어야지요." 이렇게 돼서 양 쪽은 타협점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갈수록 감정이 격화되어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드디어 꼬리는 파업을 결정하고, 6월 초하루를 기해서 이를 결행하기로 하였다. 이제 뱀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머리는 여전히 제 멋대로 움직이려 하고, 꼬리는 나무를 칭칭 감아서 움직이는 것을 결사저지하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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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그 후 소식을 듣지 못하여 싸움의 결말은 알 수 없으나, 오늘도 우리 山河에 많은 뱀들이 잘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타협점을 찾아 내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였음에 틀림없다. 아무렴 뱀이 얼마나 영리한 짐승인데 제 죽을 짓을 했겠는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이것은 까뮤철학의 대명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까뮤가 말한 "반항"은 "부정"의 산물이 아니라 "긍정"의 결과이다. 부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파괴" 뿐이다. 억압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반항"은 "부정"이 아니라 "애정과 긍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사물을 대할 때는 항상 긍정적 시각으로 正視(直視, 觀照, 統察)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의"와 "애정"을 가지고 볼 일이다. 그래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특히, 남과 다툼이 있거나 의견을 달리할 때는 "역지사지(易之思之)", 먼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나를 다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면,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집단간의 갈등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죽기 살기로 쌈질만 계속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도 뭔가 변화가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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